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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짓으로부터 __ 까지

정다운(독립 기획자)

1. 소리를 담는 몸짓

흘러가 버리는 소리를 머무르도록 하는 것은 단 하나의 몸짓1)이다. 윤희수는 담고자하는 소리를 위해 대상으로 가까이 가 몸을 기울여 그의 살갗으로 그 윤곽을 매만진다. 소리를 담기 위해 바라보고 다가가고 만지는 몸짓은 지극히 직관적이나 각각의 경계가 서로 맞닿는 순간 굉장한 사유를 가져온다. 그의 모든 감각은 이때 열리며, 주변의 감각적 인지 역시 확장된다. <La chasse>(2021)은 여기서 의미를 갖는다. 감각에 집중하기 위한 이 몸짓은 마침내 아주 작은 소리를 담아낼 준비를 한 것이다. 분명 소리는 미세하게나마 그의 신체를 진동하게 만들고, 결국 그의 신체 내부에 소리가 스며든 상태로 그는 주변의 다른 소리에 가닿는다.

본격적으로 윤희수는 소리를 집어 담기 시작한다. <For finding abstract frequencies>(2021)은 그 과정을 면밀히 보여준다. 그는 소리 채집에 아주 작은 소리까지 담아내는 컨택트 마이크(contact microphone)라는 기계를 손에 쥐고 그의 신체가 통과하는 공기를 포함해 주변에존재하는 모든 표면을 집요하게 긁어 담는다. 그는 이 과정을 가공하지 않은 채 전시2)장으로 옮겼다.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흘러갔을 것들은 휘발되지 않고 다시 전시장에서 새롭게 머문

다.

여기서 비로소 윤희수의 몸짓은 가치 있는 것이 된다. 그가 담아온 소리가 머무는 공간이 달라지면서―그는 이 지점을 ‘고기를 잡고 풀어 주는 행위처럼 소리를 잡았다가 다른 곳에서 다시 풀어 준다’고 표현한다.―그것을 함께 향유할 감상자가 등장했고, 그들 각각은 헤드폰(headphone) 너머 그의 몸짓이 표출하고 있는 의미를 전달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 각자의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신체의 움직임을 단순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렇게 의미 동반과 연관한 몸짓을 세계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여러 행위와 한 줄기로 본다면, 작품 속 수행 조각들은 서로에게 안착하여 그들 각자가 또 다른 가치를 만들게 한다.

2. 공백의 변주

소리는 결국 윤희수에게 있어 그의 신체 내부와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또 그와 타인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매개체다. 그는 이 소리를 이전에는 채집하는 행위에 집중해 의미를 만들어냈다면 <Under construction>(2021)에서는 내부의 감각을 소리로 표출했다. 이미 그의 몸에 담겨 있는 소리 조각을 그의 방식대로 직조하여 전시장에 풀어 준다. 즉 그가 작곡한 소리와 그의 목소리로 녹음한 소리를 재편집하여 재생함으로써 미완성의 항구를 재해석해 만든 구조물 주변을 맴돌도록 했다. 이것은 <VIDE(공백)> 음원, 그리고 항구에 대한 기억, 경험을 시적으로 묘사한 <vide ambient> 내레이션이다. 항구에서 날마다 다른 경험을 하고 다양한 기억을 갖게 된 그는 <Under construction>에서 자신이 바늘이 되어, 씨실과 날실인 <VIDE>와 <Videambient>으로 새로운 감각을 짠다. 그리고 그 감각으로 아직 어떤 소리도 채집되지 않은 공백을 채워간다.

 

여기서 윤희수는 감상자의 개입을 환영한다. 그의 소리 변주와 감상자의 소리는 재직조되어 또 하나의 소리를 만든다. 그리고 이 소리의 세기에 따라 구조물 끝에서 일어나는 빛의 반응은 모스부호(morse code)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의 관계를 시각화한다. 이러한 대화적인 그의 소리 탐구, 그리고 그것을 변주하며 주변과 엮어가는 행위는 소리를 매개로 관계를 만드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전시장 안의 모든 소리와 빛은 지속적으로 유영하다가, 천천히 감상자 개개인의 몸짓으로 잇는다.

3. 숨은 __ 를 찾아서

이제 감상자의 몸짓이 필요하다. 눈을 감고 윤희수가 전시장으로 옮긴 구조물을 걷어낸다. 얼마 후 소리만 남는다. 그리고 그가 소리를 담기 위해 다가가고 만졌던 것처럼 각각의 감각을 이 전시로 확장해본다. 마침내 그는 감상자로 하여금 신체에 온전히 파고든 소리와 함께 다시 의미를 찾게 한다. 감상자는 숨어 있던 무엇을 알아차리며, 이내 자신의 몸짓에 가치를 둔다.

윤희수가 그저 소리를 듣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소리를 담는 몸짓’으로 소리를 살피고 ‘공백의 변주’로 소리를 탐구했듯 그가 언급한 미지의 세계도 이와 같은 결로 읽어낼 수 있다. <Le trou, the hole>(2021)처럼 고요하고 드러나지 않은 세계가 있다 하더라도 감상자에게 전이된 몸짓은 그 세계 안에서 충분히 의미를 생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변에 따라 몸짓이 내포하는 의미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À la recherche du __ caché, 숨은 __ 를 찾아서》는 외부로부터 몸짓으로 향하지 않는다. 그가 소리를 집어내고 담아내는 행위와 함께 끊임없이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감상자는 몸짓을 하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내면에서 면밀히 분석하고 찾는다. 어쩌면 그는 여기서 감상자의 존재 자체를 끄집어내도록 제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익숙해서 그냥 흘려보냈던 일상을 감상자가 다시 들여다보고, 연장된 감각으로 미지의 구멍을 채우도록 제시하는 것이다.

‘숨은 __ 를 찾아서’에서 ‘__’ 를 공백으로 둔 것도 각각의 변주를 대입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수용하고 재조명하기 위함이다. 신체로 흡수된 모든 진동으로 결어 만든 의미는 다시 어딘가에서 자리 잡아 다음의 몸짓을 준비한다. __ 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가 품은 무엇이겠지만 그 하나의 몸짓은 분명 현존재(現存在 , Dasein)를 펼쳐내는 술래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전시장 밖에서도.

1) 여기서 ‘몸짓’은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의 『몸짓들: 현상학 시론』에서 언급하는 ‘몸짓’을 차용했다.

2) 《À la recherche du __ caché, 숨은 __ 를 찾아서》 전시는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임시공간’에서 2021년 6월 1일부터 6월 12일까지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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